코코넛집_외부는 마치 코코넛 껍질처럼 단단한 회색 석재로 마감했지만 내부는 과육과 과즙과 같이 희고 달콤하다. 담장을 없앤 판교의 주택들이 결국 건축으로 더욱 더 높고 완전한 경계를 만들지만 이를 부정할 방법은 없다. '안전과 안식'이 주거가 담당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자 덕목이기 때문이다. 코코넛집을 설계하면서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주부가 행복해야 좋은 집이다. 아주 식상한 광고문구 같지만 진부함만큼 중요하다. 밖에서 보면 들어갈 틈조차 없어 보이지만 주차장 바로 옆으로 작은 문이 달려있다. 주부가 주차하고 주방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길이다. 현관에서는 중정을 중심으로 'ㄱ'자로 꺾여 식당과 거실이 구분된다. 식당은 거실보다 크다. 넓은 식탁에서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책을 보고 공부할 수 있고, 중정을 통해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노각나무의 화려한 수형을 즐길 수도 있다. 주방 옆으로 슬라이딩 도어를 열면 보조주방이 나오고 다시 한번 열면 세탁실이 있다. 모든 공간은 벽 안쪽으로 숨길 수 있는 슬라이딩도어로 구분되어 도어를 모두 열어놓으면 하나의 실이 된다. 둘째, 프라이버시는 지켜주지만 서로 자주 마주칠 기회는 많아야 한다. 출입구부터 시작된 동선의 맨 끝에 부부의 침실을 배치했다. 1층 계단실 바로 옆에는 할머니 방이 있으며 2층의 계단실 양옆으로 아이들 방이 있다. 부부의 공간으로 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할머니방과 아이들 방을 거쳐 서로 마주치고 인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부부의 개인공간은 서재와 드레스 룸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지만 슬라이딩도어를 모두 열어놓으면 중정을 감싸 도는 열린 복도가 된다. 셋째, 틈새공간을 최대한 확보한다. 아이들 방 두 곳 사이에는 계단실과 화장실이 있다. 2층의 경사지붕 아래에 만든 아이들 방 다락을 계단실과 화장실 상부까지 확장시켜 방 크기 만한 다락을 만들었다. 현관에는 같은 크기의 창고가 딸려있지만 신발장문을 열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비밀공간이다. 계단실 하부는 넓은 창고가 있고, 칸막이벽안에는 곳곳에 수납장이 숨겨져 있다. 넷째, 단독주택에 사는 이점을 가족 모두가 누려야 한다. 부부침대에 누우면 가로로 긴 코너창을 통해 산과 하늘을 볼 수 있고, 부부 방 욕실에서는 천창으로 하늘을 보며 목욕을 할 수 있다. 부부방과 아이 방을 연결하는 테라스에서는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을 즐길 수 있다. 중정마당에는 작은 정원이 있고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으며, 창고문에 숨겨진 스크린을 내리면 마당은 야외극장이 된다.
설 계: 임영환+김선현(디림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