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바삭한 도시경관 만들기_H&M의 브랜드 이미지를 대표하는 단어는 'White & Crisp'이다. 세계 어느 곳에 있던지 동일한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그들만의 매뉴얼이다. 말 그대로 바삭바삭한 흰색의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는 차가운 물성의 커튼월을 덮는 와이어로프를 사용했다. 긍정적인 도시경관을 만들어내는 브랜드스케이프(Brandscape)를 위해 건축가의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와 같은 상업건물 설계가 시작된 것이다. H&M 홍대점은 준공된지 30년 쯤 지난 상가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친환경적 작업이었다. 리모델링 대상은 전형적인 5층의 상가건물이었다. 붉은 벽돌로 마감된 외장 재료가 브랜드이미지와 맞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은 흰색의 외투와 투명한 피부를 새롭게 입게 됐다. 하지만, 차가운 유리와 쇼윈도로 채워진 상업건물의 표정은 아니었다. 두께 3mm의 와이어로프가 50mm 간격으로 건물을 감싸며 건물의 외피에 새로운 감각을 부여한다. 패션매장의 특성상 쉽지 않은 시도였지만 여러 차례의 목업(Mock-up)을 통해 매장의 광고이미지를 드러내기에 적절한 와이어의 두께와 간격을 찾아냈다. 커튼월과 와이어라는 두개의 레이어는 보는 위치와 태양의 각도에 따라 건물에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도로 건너편에서 건물을 바라볼 때는 바깥 레이어인 와이어가 시야에서 사라지며, 각층의 포스터와 마네킹의 이미지는 또렷하게 인식된다. 도로변을 걸으며 건물을 바라볼 때는 가시각에 의해 와이어가 겹쳐지며 부드러운 실루엣(Wiring Silhouette)이 눈앞에 어른거리게 된다. 정확한 물성을 인지할 수는 없는 상태에서 거리가 좁혀질수록 와이어로프의 실체가 드러난다. 보행자의 움직임에 따라 시각적 감각과 촉각적 감각의 비중이 서로 교차된다. 기존 건물이 가지고 있던 골격을 유지하기 위해 코너부분의 기둥은 있는 그대로 노출시켰다. 와이어로 감싸진 커튼월이 그림이라면 코너의 기둥은 그림을 감싸는 프레임이 되는 것이다. 홍대 앞이라는 대학가 도심의 도로를 걸으며 H&M이라는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