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림건축사사무소의 새 사무실입니다.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직선방향으로 한참을 내려오면 왼쪽편 주택가 안에 그것도 막다른 골목의 끝에 있습니다.
앞마당에는 40년 된 감나무가 있습니다. 이 나무 때문에 설계기간이 두 배로 늘었습니다. 이 나무 때문에 건물이 뒤로 밀렸습니다. 이 나무 때문에 평면이 수차례 바뀌고 허가를 취하하고 다시 도면을 그렸습니다. 아끼던 직원 한 명도 덩달아 나갔습니다.
사실, 감나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건축주가 된 건축가의 고뇌 때문에 수시로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건축주의 갈등을 몸소 체험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더 들어야겠구나. 그들의 고민은 나의 고민보다 더 치열하고, 더 숨 막히고, 더 위태롭구나 였습니다. 실리와 계획간의 타협지점을 정확하게 찾는 것이 설계하는 건축가의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붉은 벽돌은 붉은 감과 같이 갑니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이 감나무 덕분이었습니다. 감나무 덕분에 골목이 늘 화사합니다. 가을이 되어 붉은색 감이 주렁주렁 열리면 붉은 벽돌과 더욱 잘 어울릴 거라 상상합니다. 이 나무 덕분에 건물이 뒤로 조금 물러나며 사옥 앞에 아늑한 여유가 생겼습니다. 감나무 덕분에 출근하는 아침이 즐겁습니다. 감나무 덕분에 비 오는 날 일하는 맛이 납니다. 이 나무 덕분에 발코니로 자주 나가 바람도 쐬고 머리도 식히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감나무 덕분에 건축도 살고 저희도 살고 있습니다.
오랜 공사기간동안 가지가 잘리고 뿌리도 많이 훼손되었지만 감사하게도 잘 살아남아 주었습니다. 올해는 열매를 맺지 못하겠지만 붉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붉은 벽돌과 잘 어울릴 날을 기대합니다.